트레이더조스 주인은 누구? 1979년부터 독일 가문, 가격은 끝내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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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마트는 1979년부터 독일 가문 것이다. 얼마에 팔렸는지는 46년째 아무도 모르고, 그동안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
English version → The Grocer Who Couldn't Remember the Price
한국 교민들은 트레이더조스를 ‘트조’라고 부른다. 그 마트에서 파는 냉동 만두 봉지에는 한국 회사 이름이 없다. 그런데 2024년 3월 4일 미 농무부 식품안전검사국이 트레이더조스 찐 치킨 만두 6만 1,839파운드를 1등급 리콜하면서 제조사가 기록에 남았다. CJ Foods Manufacturing Beaumont. 캘리포니아에 있는 CJ의 미국 공장이다.
한국 회사가 만든 만두를, 독일 가문이 소유한 미국 마트가, 캘리포니아에서 판다.
이 문장 하나에 이 회사의 전부가 들어 있다. 그런데 미국에서 이걸 문제 삼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없는 것들의 목록
트레이더조스를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방법은 없는 것을 세는 것이다. 회사 FAQ에 이렇게 적혀 있다. 이번 달에도 그대로 있다.
“‘세일’은 우리에게 욕입니다. 우리는 매일 낮은 가격을 유지합니다. 쿠폰 없음. 멤버십 카드 없음. 할인 없음.”
traderjoes.com 공식 FAQ
온라인 주문이 없다. 식료품도, 기프트카드도. 기프트카드는 실물만 있다. 인스타카트 같은 제3자 배송 제휴가 없다. 셀프계산대가 없다. 로열티 프로그램이 없고, 없는 이유를 회사가 직접 밝혔다. 타라 밀러가 회사 팟캐스트에서 한 말이다. “그 할인은 제조사가 냅니다. 더 사게 하려고 제조사가 매장에 돈을 주는 거죠.” 그리고 한 줄 더. “우리는 고객 데이터를 전혀 수집하지 않습니다.”
광고도 거의 없다. 광고업계에 있다가 트레이더조스 크루로 일한 마크 가디너는 2018년 팟캐스트 『프리코노믹스』에서 가장 놀란 게 그거였다고 했다. 광고를 거의 안 하고, 소셜미디어도 거의 없고, PR도 거의 없었다.
예외가 하나 있다. 대부분의 글이 놓치는 대목이다. 트레이더조스는 맨해튼에서 10년쯤 배송을 했고 2019년 3월 1일 그만뒀다. 감당 못 할 비용 증가를 고객에게 넘기는 대신 배송을 없애는 편이 매장 공간을 더 잘 쓰게 해준다는 게 회사 설명이었다.
진열 품목은 4,000개가 안 된다. CEO 맷 슬로언은 보통 슈퍼마켓이 5만 개쯤 된다고 말한다. 업계협회 FMI가 집계한 2025년 슈퍼마켓 평균은 33,248개다. 8배든 12.5배든 놀랍기는 마찬가지인데, 두 숫자를 나란히 적는 게 정직하다. 5만이라는 값은 회사가 경쟁자를 묘사한 숫자다.
그래서 이 회사는 뭔가. 그리고 왜 독일 것이라는 사실이 한 번도 문제가 안 됐나.
잡지 한 문단
시작은 잡지를 읽던 남자다.
조 컬럼비는 1930년 6월 3일 샌디에이고에서 태어나 2020년 2월 28일 패서디나에서 여든아홉에 죽었다. 1958년 메모리얼데이 주말에 퍼시픽 팰리세이즈에 프론토 마켓 1호점을 열었다. 2,500평방피트짜리였다. 60년대 중반에 열여덟 개까지 늘렸다.
그리고 1965년 10월, 후원사가 7-Eleven 모회사 사우스랜드에 팔렸다. 자금줄이 끊겼고, 그 자금줄을 사들인 회사는 캘리포니아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다음 한 일을 그는 평생 잡지 기사 하나로 설명했다. AP 부고에 남은 말이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대학 갈 자격이 되는 사람 중 60%가 실제로 간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새로 교육받은 — 더 똑똑한 게 아니라 더 잘 교육받은 — 이 계층이 뭔가 다른 걸 원할 거라고 봤어요. 그게 트레이더조스의 시작입니다.”
1호점은 1967년 8월 패서디나 애로요 파크웨이에 열었다. 옛 정수장 건물, 7,500평방피트. 스카치 100종, 버번 70종, 위스키 50종을 채웠다. 패서디나는 우연이 아니었다. “트레이더조스 매장은 전부 배움의 중심지 근처에 있었습니다. 1호점을 패서디나에 연 건 패서디나가 잘 교육받은 도시의 전형이기 때문이었죠.”
남태평양 콘셉트는 그도 별로 안 좋아했다. 보잉 747이 여행비를 크게 낮출 거라는 기사를 읽고 ‘트레이더’라는 말을 떠올렸다고 했다. 나중에 본인이 끔찍한 아이디어였다고 했다.
2주
지금의 트레이더조스 — 4,000개 품목, 자체 상표, 제조사 직거래 — 는 보통 컬럼비의 창업 통찰로 설명된다. 아니다. 응급수술이었다.
1976년 말, 캘리포니아가 주류 재판매가격유지를 폐지하고 우유 최저가 집행을 중단했다. 그다음에 벌어진 일을 컬럼비는 한 문장으로 말했다.
“2주 만에 우리 매출총이익률이 22%에서 2%로 떨어졌습니다.”
조 컬럼비, Supermarket News 2010년 12월 6일
그는 90일 만에 회사를 다시 세웠다. 그 재건축이 곧 지금의 모델이다. 아주 큰 물량으로 사고, 만드는 곳과 직접 거래하고, 공급업체에 빨리 지불하고, 재고를 위탁이 아니라 사서 소유한다. 슬로언이 값이 싼 이유로 든 네 가지가 이것이고, 거기서 따라 나오는 결론도 그가 직접 말했다. “우리는 슬로팅 피를 받지 않습니다. 우리가 파는 물건을 만드는 사람들이 매장 공간을 얻는 대가로 돈을 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된다. “트레이더조스에서 우리가 돈을 버는 유일한 방법은 고객이 계산대에서 뭔가를 살 때입니다.”
미국 식료품 유통에서 흔한 문장이 아니다. 진열대 대부분은 임대돼 있다.
담배
컬럼비가 캘리포니아에서 회사를 다시 짓던 무렵, 독일에서는 형제 둘이 갈라서는 중이었다.
카를과 테오 알브레히트는 1960년 또는 1961년에 회사를 쪼갰고 — 알디 공식 사사와 『포브스』가 서로 다르게 적는다 — 1966년에 법적으로 완전히 분리했다. 갈라선 이유로 가장 널리 알려진 건 담배다. 형 카를이 담배가 좀도둑을 부른다고 봤다는 것이다. 기자 마르틴 쿠나는 이 설명을 부정하고 경영 스타일 차이라고 본다. 두 설이 다 돌아다니고 어느 쪽도 결론이 안 났다.
중요한 건 분할 결과다. 형의 알디 쥐트가 미국 ALDI 이름을 가져갔고 1976년 아이오와에 1호점을 열었다. 동생의 알디 노르트는 프랑스, 스페인, 벨기에, 네덜란드, 폴란드를 받았다. 미국에 자기 간판으로 들어갈 길은 없었다.
『포브스』가 2010년 테오 부고에 결과를 그대로 적었다. “형제 협약 때문에 미국에서 알디 매장을 열 수 없게 된 테오가 1979년 할인 식품 체인 트레이더조스를 인수했다.”
좋아해서 산 게 아니다. 형이 이름을 가져갔기 때문에 샀다.
매각 자체에는 기억해둘 대목이 하나 있다. 컬럼비는 과반 주주였는데 종업원 주주들과 함께 팔았다. 둘을 합쳐 45%였다. 그리고 모든 주주가 같은 주당 가격을 받아야 한다고 고집했다. 그는 1988년까지 CEO로 남았다.
여기서 흔한 축약 하나를 고쳐야 한다. 알디 노르트가 트레이더조스를 소유하는 게 아니다. 1973년에 세운 가문 재단 셋 — 마르쿠스, 루카스, 야코부스 — 이 알디 노르트 지분과 트레이더조스 지분을 함께 들고 있다. 모자회사가 아니라 같은 신탁 아래 자매회사다. 그래서 트레이더조스는 알디 노르트와 독립적으로 운영된다고 정확하게 말하면서, 동시에 주인이 같은 상태가 성립한다.
17일
왜 이 회사가 자기 숫자를 한 번도 말하지 않는지 알려면 1971년으로 가야 한다.
테오 알브레히트가 납치돼 17일간 감금됐다. 몸값은 700만 마르크, 약 200만 달러였고 에센 주교 프란츠 헹스바흐가 전달했다. 절반만 회수됐다. 그는 그 뒤 몸값을 사업 경비로 공제해 달라고 소송을 냈다. 졌다.
그리고 사라졌다. 『포브스』는 형제를 예티보다 더 은둔적이라고 불렀다. 테오의 사진은 사실상 두 장이 전부다. 1971년 것 하나, 1987년 것 하나. 방탄차로 매일 다른 경로를 다녔고 공개 발언을 한 적이 없다.
트레이더조스의 재무 비공개는 모누로비아에서 만든 방침이 아니다. 물려받은 습관이다.
아무것도 공시하지 않는 회사
『포천』은 2010년에 경영진을 “강박적으로 비밀스럽다”고 표현했고, 모누로비아 본사에 간판이 없다는 사실을 적었고, 이 회사가 자사 사업 운영에 관한 주요 기사에 한 번도 협조한 적이 없다고 썼다.
매장 수는 알 수 있다. 회사가 발표하기 때문이다. 2023년 5월 42개 주와 워싱턴 D.C.에 543개, 2025년 초 579개, 올해 회사 팟캐스트에 624개라는 숫자가 나왔다. 2024년 34개, 2025년 43개를 열었다. 주 수는 회사 매장 디렉터리로 대조된다. 매장이 없는 여덟 주는 알래스카, 하와이, 몬태나, 노스다코타, 사우스다코타, 웨스트버지니아, 와이오밍, 미시시피다.
매출은 다르다. 공식 수치가 없다. 있었던 적이 없다. 있는 건 추정치 무더기이고, 그 추정치들이 서로 안 맞는다. 『포천』은 2009 회계연도를 약 80억 달러로 봤다. 『포브스』는 닷새 전에 340개 점포에 약 55억 달러로 적었다. CNBC는 2020년을 165억 달러로 봤다. 경영진에게 귀속된 유일한 숫자는 비영리단체 이사 소개글에 있다. 댄 베인이 사업을 12억 달러에서 200억 달러 이상으로 키웠다는 문장이다. 이사 약력이지 재무제표가 아니다.
그래서 거의 모든 소개 기사에 나오는 주장 하나를 검증할 수 있다. 트레이더조스가 평방피트당 매출에서 코스트코를 압도한다는 것이다.
성립하지 않는다. 코스트코 FY2025 10-K는 순매출 2,699억 1,200만 달러, 창고 914개, 평균 약 147,000평방피트를 보고했다. [본지 계산] 2,699억 1,200만 달러를 914개 창고 × 147,000평방피트로 나누면 평방피트당 약 2,008달러가 나온다. 돌아다니는 트레이더조스 추정치는 1,734달러에서 2,000달러 남짓 사이이고, 그중 가장 최근 것이 2014년 자료다. 두 값은 같은 구간에 있고, 감사를 받은 쪽은 하나뿐이다.
편한 숫자는 감사받지 않은 쪽이다. 그게 15년째 반복되고 있다.
유일한 싸움
트레이더조스가 실제로 다투는 자리가 하나 있다. 국적이 아니다.
2026년 2월 『포브스』는 이 회사를 미국 최고 대기업 고용주 1위로 뽑았다. 전년 2위에서 올라섰고, 21만 7천 명 이상을 설문한 결과다. 이건 회사 쪽 가장 강한 증거이니 온전한 세기로 적어둔다.
2022년 이후 다섯 개 매장이 노조를 만들었다. 매사추세츠 해들리(2022년 7월 28일, 45–31, 미국 1호), 미니애폴리스(55–5), 켄터키 루이빌(48–36), 캘리포니아 오클랜드(73–53), 그리고 시카고 노스센터. 마지막 건은 71–70이었고, 사측이 다툰 한 표를 전국노동관계위원회가 2026년 7월에 인정하면서 결정됐다. 뉴욕 에식스 크로싱은 76–76 동수로 부결됐다.
이번 달 기준, 첫 단체협약을 맺은 매장은 한 곳도 없다.
회사는 노조 회피로 알려진 로펌 Littler Mendelson을 선임했고, 투표 전 강제 참석 설명회를 열었고, 노조가 “Trader Joe’s”라는 이름을 쓴다며 상표권 소송을 냈다. 그 소송은 2024년 1월 패소했다. 판사는 사측이 노동자를 상대로 법 체계를 무기화하려 했다고 적었다. 2025년 9월 제9순회항소법원이 그 소송을 되살렸다.
그리고 2024년 1월 16일, 행정법판사 찰스 뮬 앞의 청문에서 사측 변호인 크리스토퍼 머피(Morgan Lewis)가 이렇게 주장했다. 전국노동관계법은 — 위원회의 구조와 조직, 행정법판사를 포함해 — 위헌이라는 것이다. 아마존과 스타벅스도 같은 주장을 했고, 같은 로펌이 스페이스X를 대리했다.
결말은 대부분의 보도가 놓쳤다. 2024년 11월 8일 뮬 판사 결정문 각주에 이렇게 적혀 있다. 트레이더조스는 그 항변을 뒷받침하는 어떤 주장도 브리프에서 하지 않았다. 위헌을 꺼내놓고 변론서에서는 다루지 않은 것이다. 같은 결정은 2022년 5월 30일부터 6월 11일 사이 해들리에서 17건의 위반을 인정했고, 해들리와 미니애폴리스의 노조 크루가 비노조 직원보다 불리한 퇴직 혜택을 받은 사실도 인정했다. 2026년 2월 제5순회항소법원이 사측 청구를 기각하고 위원회 명령을 집행했다.
이 대목의 숫자 하나는 조심해야 한다. 『포천』은 2010년에 트레이더조스가 직원 총소득의 15.4%를 퇴직계좌에 적립한다고 보도했다. 현재 채용 페이지에는 기여율이 아예 없다. 15.4%는 2010년에 관한 사실이다.
아무도 서명하지 않았다
이 시리즈 첫 편은 버드와이저였고, 그 글을 관통한 숫자는 1만 1,449명이었다. 미국 맥주가 벨기에 것이라는 게 드러났을 때 청원에 서명한 사람 수다.
트레이더조스는 46년째 독일 가문 것이다. 그걸 이유로 한 불매 운동은 한 번도 없었다. 찾을 수 있는 반대 운동은 전부 노동 문제다. 2021년 벤 보네마 해고, 그 뒤의 노조 분쟁. 알브레히트 가문 때문인 건 하나도 없다.
여섯 칸을 채워보면 절반이 빈다. 태어난 곳은 1967년 패서디나. 본사는 모누로비아, 간판 없는 건물. 주주는 독일 재단 셋. 월급은 트레이더조스가 주고, 크루 수는 추정치다. 법인이 어디인지는 공시하지 않는다. 공장이 어디인지도 — 파는 것의 80% 이상이 자체 상표이고, 이름을 확실히 댈 수 있는 제조사는 연방 리콜 기록에 남은 곳들뿐이다. 그래서 2024년 3월 리콜된 찐 치킨 만두를 CJ가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컬럼비는 얼마에 팔았느냐는 질문에 기억이 안 난다고 답했다. 46년이 지난 지금도 그게 누가 내놓은 것 중 가장 완전한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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