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민 참치의 주인은 서울에 있다
- Get link
- X
- Other Apps
세븐일레븐은 일본, 버거킹은 캐나다, 지프는 네덜란드. 그리고 스타키스트는 동원. 미국 마트에서 국적 찾기.
English version → What Makes a Brand “American”? It’s Complicated
미국 마트 참치 코너에는 60년 넘게 같은 자리를 지킨 얼굴이 있다. 초록 모자를 쓴 참치, 찰리다. 스타키스트 캔마다 그려진 이 마스코트를 보고 자란 미국인들이 대부분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다. 이 회사 주인이 서울에 있다는 것.
2008년 여름, 동원그룹이 델몬트가 내놓은 스타키스트를 3억 6,300만 달러에 사들였다. 공교롭게 같은 여름, 미국인들은 딴 데서 울고 있었다. 벨기에 자본이 버드와이저를 사겠다고 나서자 세인트루이스 시민들은 반대 서명 사이트를 열어 일주일에 1만 1,449명을 모았고, 방송에 나온 시민운동가는 이렇게 말했다. “버드와이저는 야구만큼 미국적입니다.” 그 버드와이저는 결국 520억 달러에 팔렸다. 스타키스트를 143개 사고도 남는 돈이다.
맥주 앞에서는 울던 사람들이 참치 앞에서는 아무 말이 없었다.
조용했다.
미국에 살거나 미국 물건을 직구하다 보면 이런 순간이 온다. 미국 것인 줄 알고 집었는데 아니고, 외국 것인 줄 알았는데 미국 것인 순간. 오늘은 그 목록을 정리한다. 대체 어디까지가 미국 브랜드일까.
세븐일레븐은 일본, 버거킹은 캐나다, 지프는 네덜란드
익숙한 것부터 가자.
세븐일레븐. 1927년 텍사스 댈러스의 얼음 가게에서 시작한 원조 미국 편의점이다. 1991년 회사가 기울자 일본 파트너가 지분 70%를 사들였고, 지금 주인은 도쿄의 세븐앤아이 홀딩스다. 미국이 만들어 일본으로 넘어간 것을, 한국인은 일본 것인 줄 알고, 미국인은 미국 것인 줄 안다. 둘 다 반만 맞았다.
버거킹은 1954년 마이애미에서 태어났지만 2014년부터 캐나다 토론토의 RBI 소속이다. 세금 때문에 본사를 옮긴 사연이라 회사도 굳이 티를 내지 않는다. 하이볼 잔에 들어가는 짐빔은 2014년 일본 산토리가 160억 달러에 가져갔다. 법으로 미국 밖에서는 만들지도 못하는 켄터키 버번인데, 주인은 도쿄에 있다.
GE 냉장고는 어떤가. 미국 가전의 상징 같은 그 로고는 2016년부터 중국 하이얼 것이다(56억 달러). 미국 한인들이 ‘트조’라 부르며 아끼는 트레이더조스는 1979년부터 독일 알디 가문 소유다. 얼마에 샀는지는 47년째 비밀이다. 아는 사람은 그 집안뿐이다.
마지막 카드가 제일 얄궂다. 조사기관 브랜드키스는 해마다 미국인 수천 명에게 ‘가장 애국적인 브랜드’를 묻는데, 지프가 25년 연속 1위다(2026년 조사, 성인 9,720명). 이차대전 군용차로 태어난 그 지프가 속한 스텔란티스는 네덜란드 법인이다. 미국인들이 사반세기 동안 가장 애국적이라 꼽아온 브랜드가, 서류상으로는 네덜란드 회사다.
미국은 당하기만 했나, 가짜 외국을 발명한 원조다
반대편 목록도 있다. 이쪽이 더 웃기다.
하겐다즈. 이름만 보면 덴마크 어느 장인 가문이 떠오르지만, 1960년 뉴욕 브롱크스에서 아이스크림 장수 루번 매터스가 만든 순수 미국산이다. 이름의 정체를 그는 생전에 이렇게 털어놨다. “2차대전 때 유대인을 구해준 유일한 나라가 덴마크였어요. 그래서 완전히 지어낸 덴마크식 이름을 만들어 등록한 겁니다.” 정작 덴마크어에는 ä라는 글자도, zs라는 철자도 없다. 어느 나라 말도 아닌 소리다. 그런데 고급스럽게 들렸고, 그래서 비싸게 팔렸다.
끝이 아니다. 20년 뒤 매터스는 ‘프로즌글래제’라는 경쟁사를 고소한다. 죄목이 걸작이다. 미국산 아이스크림에 가짜 스칸디나비아 이름을 붙여서 자기 콘셉트를 베꼈다는 것. 판사는 소송을 기각하며 이런 취지로 답했다. 당신들 손도 깨끗하지는 않다고(1980년 뉴욕 남부연방지법). 미국의 고급 ‘북유럽’ 아이스크림 두 개가 전부 뉴욕산이라는 사실이 법정 기록으로 남았다.
칼도 있다. 1978년부터 TV 광고로 유명해진 ‘긴수(Ginsu)’ 칼. “일본에서는 손이 칼처럼 쓰입니다만”으로 시작하는 전설의 광고 덕에 다들 일본 칼인 줄 알았지만, 오하이오주 프리몬트 공장에서 만든 미국 칼이다. 긴수는 일본어로 아무 뜻이 없다. 로드아일랜드의 광고쟁이 둘이 지어낸 소리다.
국적은 붙였다 뗄 수 있는 스티커였다. 팔리기만 한다면.
주인이 바뀌면 물건도 나빠질까, 그게 아니다
이쯤에서 찜찜해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내가 쓰는 물건의 주인이 어느 날 다른 나라로 바뀌었는데, 정말 아무 일도 없는 걸까.
걱정에는 근거가 있다. 2013년 미국 최대 돼지고기 회사 스미스필드가 중국에 팔릴 때, 상원 농업위원장 데비 스태버나우는 사상 처음으로 기업 인수 하나를 놓고 청문회를 열고 이렇게 말했다. “경제 안보는 국가 안보의 일부입니다.” 밥상과 공장이 남의 손에 넘어가는 일을 가볍게 볼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실제 기록은 좀 싱겁다. 1989년 소니가 컬럼비아 픽처스를 34억 달러에 인수했을 때 뉴스위크는 ‘일본이 할리우드를 침공했다’는 표지를 냈다. 그 침공의 결과가 무엇이냐면, 컬럼비아는 37년째 캘리포니아에서 스파이더맨을 만들고 있다.
별일이 없었다.
오히려 새 주인들은 미국에 돈을 붓는 쪽이다. 하이얼은 GE 가전 본사를 켄터키 루이빌에 그대로 두고 미국인 1만 5,500명을 고용 중이며, 약속한 투자만 65억 달러다. 밀워키 툴은 2005년 홍콩 TTI에 팔린 뒤 위스콘신에서 오히려 몸집을 불렸다. 미 상무부 집계로 외국계 기업이 미국에서 고용한 사람은 860만 명. 미국 민간 일자리 열여섯 개 중 하나다. 브랜드를 산 돈이 아까워서라도, 공장은 함부로 못 옮긴다.
미국 정부도 요령이 생겼다. 지난해 US스틸을 일본제철에 넘길 때(149억 달러) 정부가 챙긴 것은 ‘골든셰어’라 부르는 주식 딱 한 주였다. 이 한 주에 본사 이전과 사명 변경과 공장 폐쇄를 막는 거부권이 달려 있다. 소유권은 팔되 간판과 일자리는 법으로 묶은 것이다. 주식은 일본으로 갔고, 상징은 미국에 남았다.
그러니 답은 이렇게 정리된다. 브랜드 국적은 하나가 아니다. 태어난 곳, 서류상 국적, 본사, 주주, 공장, 월급 통장. 여섯 개가 전부 다른 나라일 수 있고, 소비자 눈에 보이는 것은 그중 광고가 골라서 보여주는 한 칸이다.
그래서 이 블로그는 여권을 안 본다
이 블로그는 앞으로 미국에서 팔리는 브랜드들을 하나씩 다룬다. 기준은 여권이 아니라 장바구니다. 미국 마트에 깔려 있고 우리가 직구로 사 나르는 물건이면, 주주가 어느 나라 사람이든 여기서 이야기한다. 순서도 정해뒀다. 브랜드가 걸어온 길을 먼저 쓰고, 살 만한 물건인지 직구가 이득인지는 그다음에 따진다. 물건을 권하기 전에 물건을 아는 게 먼저라서다.
그리고 다음에 미국 마트 참치 코너를 지나거든 찰리한테 눈인사 정도는 해 주자. 반세기 동안 미국의 샌드위치를 책임진 그 참치, 이제 우리 회사 소속이다.
다음 글 예고. 영국의 한 발명가는 5,127번째 시제품으로 미국 거실을 점령했다. 그 전에 업계의 모든 회사가 그를 거절했다는 이야기.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