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는 남았고 농장은 줄었다

스미스필드라는 이름은 버지니아 법이 지키는 햄의 이름이고, 1936년에 태어난 회사의 이름이고, 홍콩 상장사가 약 87%를 가진 자회사의 이름이다. 2013년 미국 상원에서 한 약속을 13년 뒤 공시로 채점했다. English version → Same Old Smithfield SMITHFIELD · 여섯 칸 중 바다를 건넌 칸은 하나다 더 어메리칸 쉘프 태어난 곳 1936년 버지니아주 스미스필드 스미스필드 패킹 컴퍼니 조지프 W. 루터와 아들 조지프 W. 루터 2세 법인 버지니아주 법인 스미스필드 푸즈 같은 버지니아 법인으로 살아남았다 바뀐 것은 주주 한 명이다 본사 커머스 스트리트 200번지 스미스필드 타운 2013년 합병 서류 표지와 2025년 연차보고서 표지의 주소가 같다 주주 WH그룹 약 87% 2026년 4월 8일 기준 위임장 케이맨제도에서 설립되고 홍콩에 본사를 둔 WH그룹 만드는 곳 가공공장 38곳 18개 주에 가공공장 38곳 도축은 6개 주 8곳 주로 미국과 멕시코에서 일한다 월급 미국 약 3만 2천 명 2025년 12월 28일 기준 멕시코 약 2,500명 44%가 단체협약을 적용받거나 노조원이다 다섯 칸이 미국을 가리킨다. 멕시코가 조금 섞였을 뿐이다. 주주 칸 하나만 바다를 건넌다. 그런데 그 한 칸이 이사회를 고른다. 주식 100주 중 87주가 한 주주 몫이고, 나스닥에서 사고팔리는 건 13주 남짓이다. 주주: 2026년 4월 8일 기준 위임장. 월급: 2025년 12월 28일 기준. 이 매체는 미국 진열대 위의 모든 브랜드에 여섯 가지를 묻는다. 다섯 칸이 미국을 가리킨다. 주주 칸 하나만 바다를 건넌다. 스미스필드라는 이름은 세 겹이다 스미스필드라는 이름은 세 겹이다. 맨 아래 겹은 버지니아주의 타운 이름이다. 가운데 겹은 1936년 그 타운에서 조지프 W. 루터 부자가 세운 돼지고기 회사다. 2013년 ...

파이어스톤은 죽지 않았다

1988년 브리지스톤이 산 것은 이름이 아니라 회사였다. 그 회사는 이름만 바꾼 채 지금도 델라웨어 등기부에 살아 있다.


English version → The Company That Never Died

파이어스톤 · 여섯 칸 더 어메리칸 쉘프 태어난 곳 오하이오주 애크런 1900년 8월 3일. 창업자는 하비 S. 파이어스톤이다. 법인 델라웨어 옛 파이어스톤 타이어 앤드 러버 컴퍼니. 지금 이름이 BATO다. 본사 내슈빌 미주 본부는 내슈빌 브리지스톤 타워. 그룹 본사는 도쿄 주오구 교바시. 주주 15.49% 일본마스터트러스트신탁은행 신탁계정. 공익재단법인 이시바시재단 12.02%. 만드는 곳 디모인·애크런 디모인의 농업용 타이어, 애크런의 인디카 경주용 타이어. 월급 46,312명 연결 직원 115,716명 중 미주 부문, 다섯 명 중 두 명. 여섯 칸이 애크런, 델라웨어, 네바다, 내슈빌, 도쿄로 흩어진다. 두 번째 칸을 다시 보자. 델라웨어의 그 회사가 파이어스톤이다. 주주는 2025년 12월 31일 명부, 자기주식을 뺀 주식 수로 나눈 계산값. 발행주식 전체로 나누면 재단 몫은 10.75%. 마트 선반의 파이어스톤 승용 타이어가 어느 공장에서 나왔는지는 1차 자료로 확인하지 못했다.
이 매체는 미국 진열대의 물건마다 여섯 가지를 묻는다. 여섯 답이 한곳에 모이면 쓸 게 없다. 흩어지면 그 틈이 글이 된다.

같은 테네시에서 한 회사는 닫고 한 회사는 늘렸다

"2025년 7월: 브리지스톤이 테네시주 라버뉴의 트럭·버스 타이어 공장을 닫아 일자리 700개를 없앴다."

미국철강노조(USW) 위원장 로잰 브라운이 2026년 9월 14일 미국 무역대표부에 보낸 서한의 한 줄이다. 서한은 2024년 말 이후 미국 타이어 공장 9곳이 전부 또는 일부 문을 닫았거나 폐쇄를 예고했다고 적었다. 없어졌거나 없어질 일자리는 약 7,550개. 라버뉴의 기계는 2025년 7월 2일에 멈췄다. 회사가 밝힌 인원은 약 700명이고, 테네시 노동부에 낸 해고 예고 신고서에는 658명이 적혔다.

같은 테네시의 클락스빌에는 한국타이어 공장이 있다. 2017년 10월 연 550만 개 규모로 문을 연 한국타이어의 첫 미국 공장이다. 2022년 8월 한국타이어 이사회가 16억 달러 증설을 승인했다. 승용·경트럭 타이어를 1,100만 개로 두 배 늘리고, 트럭·버스 타이어를 한 해 100만 개 새로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브리지스톤이 트럭·버스 공장을 닫은 주에서, 한국타이어는 트럭·버스 라인을 새로 깔겠다고 한 것이다. 계획대로 풀가동에 들어갔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본사도 한 도시에 있다. 브리지스톤 미주 본부는 내슈빌의 30층짜리 브리지스톤 타워다. 한국타이어 미국 본사는 2016년 뉴저지에서 내슈빌로 옮겨 왔다.

세 번째 사실은 조금 불편하다. 한국산 승용 타이어에는 반덤핑 관세가 붙어 있고, 그 관세를 청원한 곳이 USW다. 애크런, 디모인, 워런카운티의 브리지스톤 노동자를 대표하는 바로 그 노조다. 2021년 원명령 때 한국타이어 세율은 27.05%였다. 재심을 거치며 6.30%, 4.64%까지 내려갔다가 2026년 7월 13일 13.03%로 다시 올랐다. 100달러어치 한국타이어가 미국 세관을 지날 때 13달러를 따로 맡겨야 한다는 뜻이다.

셋을 나란히 놓을 수는 있다. 잇는 것은 안 된다. 브리지스톤은 라버뉴 폐쇄를 두고 사업 구조 최적화라고만 했고, USW는 수입 전반을 원인으로 든다. 한국타이어가 들어와서 라버뉴가 닫혔다고 말하는 1차 자료는 없다.

브리지스톤의 미국은 파이어스톤 공장 하나로 시작됐다

라버뉴 공장은 1972년 파이어스톤 공장으로 가동을 시작했다. 브리지스톤은 1980년대 초 이 공장을 파이어스톤에게서 사들였고, 1983년부터 트럭·버스 레이디얼 타이어를 만들었다. 브리지스톤 아메리카스 공식 연혁에 그 대목이 있다. "브리지스톤은 파이어스톤 타이어 앤드 러버 컴퍼니에게서 테네시의 타이어 공장을 샀고, 이것이 회사의 첫 북미 제조 공장이 됐다." 2025년의 폐쇄는 브리지스톤이 미국에서 처음 가진 공장의 폐쇄였다. 사서 40여 년을 돌리고 닫았다.

그 40여 년 사이에 브리지스톤은 공장을 판 회사까지 통째로 샀다. 1988년의 일이다. 그렇다면 파이어스톤이라는 회사는 어디로 갔을까?

흔한 답은 일본 회사에 먹혔다는 것이다. 브리지스톤이 스스로 낸 서류는 다르게 말한다.

여섯 칸

이 매체는 미국 진열대의 물건마다 여섯 가지를 묻는다. 어디서 태어났나. 법인은 어디에 있나. 본사는 어디인가. 주식은 누가 갖고 있나. 어디서 만드나. 월급은 누가 주나. 여섯 답이 한곳에 모이면 쓸 게 없다. 흩어지면 그 틈이 글이 된다.

태어난 곳. 1900년 8월 3일, 오하이오주 애크런. 창업자는 하비 S. 파이어스톤(1868~1938)이다. 회사 연혁에 따르면 첫 공장은 12명으로 시작했다. 1906년 포드에 타이어 2,000세트를 납품했는데, 모델 T가 나오기 2년 전이다.

법인. 델라웨어. 옛 파이어스톤 타이어 앤드 러버 컴퍼니는 지금 브리지스톤 아메리카스 타이어 오퍼레이션스(BATO)라는 델라웨어 유한책임회사다. 그 위에 네바다 법인 브리지스톤 아메리카스가 있고, 도쿄의 브리지스톤 본사가 그 지분 100%를 직접 갖는다. 사이에 끼인 지주회사는 없다.

본사. 미주 본부는 내슈빌 브리지스톤 타워, 직원과 협력 인력 1,700명 넘게 일하는 30층 건물이다. 그룹 본사는 도쿄 주오구 교바시에 있다. 파이어스톤 본사는 애크런에서 시카고(1987)로, 다시 애크런(1989)으로, 그리고 내슈빌(1992)로 옮겼다.

주주. 2025년 12월 31일 명부 1위는 일본마스터트러스트신탁은행 신탁계정 15.49%, 2위는 공익재단법인 이시바시재단 12.02%다(자기주식을 뺀 주식 수로 나눈 계산값. 발행주식 전체로 나누면 재단 몫은 10.75%). 신탁계정 뒤의 실제 주인은 명부에 나오지 않는다. 이시바시재단의 설립 목적은 미술 보급과 예술·문화·교육 지원이고, 이시바시 성을 가진 개인은 상위 10위에 없다. 파이어스톤 타이어가 남긴 이익의 배당을 받는 주주 가운데 하나가 미술 재단이라는 얘기다.

만드는 곳. 브리지스톤이 공식 목록에 올린 미국 타이어 공장은 노스캐롤라이나 윌슨, 사우스캐롤라이나 에이킨, 테네시 워런카운티, 아이오와 디모인, 일리노이 블루밍턴이다. 파이어스톤 이름이 확실히 붙어 나오는 곳은 두 군데다. 디모인의 농업용 타이어, 그리고 2022년 애크런에 문을 연 인디카 경주용 타이어 공장. 마트 선반의 파이어스톤 승용 타이어가 어느 공장에서 나왔는지는 1차 자료로 확인하지 못했다.

월급. 2025년 말 브리지스톤 연결 직원은 115,716명이다. 그중 미주 부문이 46,312명, 다섯 명 중 두 명이다. 미국만 따로 센 숫자는 공시하지 않는다. USW는 애크런·디모인·블루밍턴·러셀빌·워런카운티 노동자를 대표한다. 윌슨과 에이킨은 USW 명단에 없다.

여섯 칸이 애크런, 델라웨어, 네바다, 내슈빌, 도쿄로 흩어진다. 두 번째 칸을 다시 보자. 델라웨어의 그 회사가 파이어스톤이다.

사라진 쪽은 파이어스톤이 아니었다

브리지스톤은 2026년 3월 18일 도쿄에서 2025년도 유가증권보고서를 냈다. 거기 적힌 회사 연혁 두 줄을 겹쳐 읽으면 된다.

"1988년 5월 파이어스톤 타이어 앤드 러버 컴퍼니 인수(현 브리지스톤 아메리카스 타이어 오퍼레이션스)." 그리고 "1982년 11월 미국에 브리지스톤 타이어 매뉴팩처링(USA) 설립(1990년 5월 브리지스톤/파이어스톤에 합병, 현 브리지스톤 아메리카스 타이어 오퍼레이션스)."

파이어스톤 · 사라진 쪽은 파이어스톤이 아니었다 더 어메리칸 쉘프 브리지스톤 본사 도쿄 지분 100%를 직접 브리지스톤 아메리카스 네바다 법인 파이어스톤 타이어 앤드 러버 컴퍼니 브리지스톤/파이어스톤 브리지스톤 아메리카스 타이어 오퍼레이션스 1900년 8월 3일 오하이오주 애크런 1988년 5월 인수 1989년 이름을 달았다 1990년 5월 합병 2001년 12월 사업별로 나뉘어 지금 1982년 11월 브리지스톤 타이어 매뉴팩처링(USA) 먹힌 쪽은 파이어스톤이 아니었다. 브리지스톤은 2026년 3월 18일 도쿄에서 2025년도 유가증권보고서를 냈다. 일본 회사의 미국 공장 법인이 하비 파이어스톤의 법인 속으로 흡수된 것이다.
유가증권보고서에 적힌 회사 연혁 두 줄을 겹쳐 읽으면 된다. 1990년 브리지스톤이 미국에 세운 제조법인이 브리지스톤/파이어스톤 안으로 합병돼 들어갔다.

괄호 안의 순서가 뒤집혀 있다. 사들인 파이어스톤이 1989년 브리지스톤/파이어스톤이라는 이름을 달았다. 1990년 브리지스톤이 미국에 세운 제조법인이 그 안으로 합병돼 들어갔다. 일본 회사의 미국 공장 법인이 하비 파이어스톤의 법인 속으로 흡수된 것이다.

먹힌 쪽은 파이어스톤이 아니었다.

2001년 12월 이 법인은 사업별로 나뉘어 지주회사 아래로 들어갔고, 지금 이름이 BATO다. 파이어스톤 공식 사이트 맨 아래 저작권 줄에도 그 이름이 있다. "© 2026 Bridgestone Americas Tire Operations, LLC."

같은 보고서는 연결 매출의 10%를 넘는 자회사를 따로 적는데, BATO와 정비소를 굴리는 소매 법인이 거기 이름을 올렸다. 2025년 BATO 매출은 1조 1,695억 엔이었다. 그룹 매출 4조 4,295억 엔으로 나누면 26.4%다. 브리지스톤이 번 돈을 네 몫으로 나누면 한 몫 넘게가 하비 파이어스톤이 세운 법인을 거쳐 들어온다. 보고서는 1988년 파이어스톤 인수를 회사의 "제2의 창업(브리지스톤 2.0)"이라고 적었다.

처음 제안은 인수가 아니라 합작이었다

1987년의 파이어스톤은 미국 2위 타이어 회사였다. 직원 5만 3,000명 가운데 2만 7,000명이 오하이오에 있었다. 둘 중 한 명꼴이다. 본사는 이미 애크런을 떠나고 있었다. 1987년 4월 30일 파이어스톤은 본사를 시카고로 옮기겠다고 발표했다. 회장 존 네빈 아래 미국인 경영진의 결정이었고, 브리지스톤 인수 1년 전이다. 애크런의 승용·트럭 타이어 생산은 그보다 7년 앞선 1980년에 이미 끝나 있었다.

1988년 2월 파이어스톤이 발표한 것은 매각이 아니었다. 타이어 사업을 떼어 합작사로 넘기고, 그 합작사를 브리지스톤 75%, 파이어스톤 25%로 나누는 구조였다. 브리지스톤이 낼 돈은 현금 10억 달러 이상이었다.

이탈리아의 피렐리가 끼어들었다. 자회사 비어(Veere)를 앞세워 회사 전체에 주당 58달러, 총 19억 달러를 불렀다. 합작을 막으려는 입찰이었다. 네빈은 3월 7일 주주들에게 편지를 썼다. "이사회는 여러분이 비어의 제안을 받아들일지 거절할지 결정을 미루고, 먼저 이사회의 권고를 듣고 숙고해 주기를 권합니다."

3월 18일 브리지스톤이 판을 뒤집었다. 합작을 접고 주당 80달러, 약 26억 달러에 전부를 사겠다고 했다. 피렐리가 부른 값에 한 주당 22달러, 38%를 더 얹은 셈이다. 2월 중순 파이어스톤 주가는 30달러가 안 됐다. 한 달 전 1만 원 하던 물건에 2만 6천 원 넘게 부른 격이다. 인수는 5월에 끝났고, 네빈은 훗날 이 거래를 일본 기업의 미국 제조업체 인수 가운데 최대라고 규정했다.

그다음은 비싼 수업이었다. 1989년과 1990년 북미 손실은 하루 100만 달러를 넘었다. 4년 반 누적 손실은 12억 달러 이상이었다. 4년 반 내내 하루 평균 70만 달러 넘게 잃은 셈이다.

63세 최고경영자는 영어로 사과했다

2000년 9월 6일, 미국 하원 상무위원회 소위 합동 청문회. "저는 63세이고, 이런 공개 석상에 선 것은 처음이라 적잖이 떨립니다."

브리지스톤/파이어스톤 최고경영자 오노 마사토시의 말이다. 그는 질의 답변은 통역과 임원 둘에게 맡기겠다면서도, 진술문만은 영어로 읽으려고 연습해 왔다고 했다. 그리고 사과했다. 속기록(Serial No. 106-165)에 남은 원문은 이렇다.

"I come before you and apologize to you and the American people, especially for the family they have lost, loved ones, in these terrible rollover accidents."

문장이 한 번 삐끗한다. 굳이 옮기면 "여러분과 미국 국민 앞에 와서 사과합니다, 특히 그들이 잃은 가족을 위해, 사랑하는 이들을, 이 끔찍한 전복 사고에서" 정도가 된다. 지금 돌아다니는 매끈한 영어 판본은 속기록에 없다. 남은 것은 모국어가 아닌 말로 가장 무거운 문장을 읽다 문법이 흔들린 순간이다. 오노는 이어서 "브리지스톤/파이어스톤을 대표해" 이 청문회에 이르게 한 일에 전적이고 개인적인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그가 대표한 회사는 파이어스톤을 삼킨 일본 회사가 아니었다. 법적으로는 파이어스톤 그 자체였다.

같은 청문회에서 스투팩 의원이 그 연속성을 다른 쪽에서 짚었다. "22년 전 이 위원회는 레이디얼 타이어의 첫 트레드 벨트 분리 사건으로 나흘간 청문회를 열었습니다. 그 타이어는 파이어스톤 500이었습니다. … 사망 15명, 부상 16명이었고, 결국 사망자는 41명이 됐습니다." 처음 센 사망자의 세 배 가까이다.

1978년에도 같은 위원회, 같은 회사, 같은 고장이었다. 그해 10월 리콜에 합의하면서 파이어스톤 회장 리처드 라일리가 한 말이 워싱턴포스트에 실렸다. "보도가 워낙 많이 나와서 리콜에 동의하는 겁니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그때 리콜된 파이어스톤 500을 1,450만 개로 센다.

22년 사이 주주 명부가 바뀌었다.

650만 개는 회사가 고른 숫자였다

2000년 8월 9일 파이어스톤은 리콜을 발표했다. 2001년 10월 나온 NHTSA 조사보고서가 규모를 적었다. P235/75R15 규격의 래디얼 ATX, ATX II, 윌더니스 AT 약 1,440만 개. ATX는 생산 공장과 관계없이 전부, 윌더니스 AT는 일리노이주 디케이터 공장 생산분만 대상이었다.

파이어스톤 · 650만 개는 회사가 고른 숫자였다 더 어메리칸 쉘프 리콜 · 2000년 8월 9일 약 1,440만 개 P235/75R15 규격의 래디얼 ATX, ATX II, 윌더니스 AT NHTSA 조사보고서 약 1,440만 개 아직 미국 도로를 달리던 것의 회사 추정치 추정 650만 개 리콜 대상 열 개 중 도로 위에 남은 것이 네 개 반 사망자 수 271명 2001년 가을 · 이 중 트레드 분리 192명 4명 2000년 5월 2일 88명 8월 31일 101명 9월 21일 192 271명 2001년 가을 650만은 다른 리콜이 아니다. 두 숫자 다 맞다. 회사는 작은 쪽을 앞에 세웠다. 1,440만 개는 2001년 10월 NHTSA 조사보고서, 650만 개는 오노가 의회에 낸 서면 진술의 숫자다. 2001년 가을 사망 271명, 부상 800명 이상: UPI와 크루거·마스 논문이 인용한 수치.
사망자 수는 날짜를 붙이지 않으면 쓸 수 없다.

그런데 미국인이 들은 숫자는 650만이었다. 오노가 의회에 낸 서면 진술은 회사가 "추정 650만 개"를 자발적으로 리콜했다고 적었다. 650만은 다른 리콜이 아니다. 1,440만 개 가운데 리콜이 시작될 때 아직 미국 도로를 달리던 것의 회사 추정치다. 리콜 대상 열 개 중 도로 위에 남은 것이 네 개 반이었다는 얘기다. 두 숫자 다 맞다. 회사는 작은 쪽을 앞에 세웠다.

사망자 수는 날짜를 붙이지 않으면 쓸 수 없다. NHTSA가 예비조사를 시작한 2000년 5월 2일에는 4명이었다. 8월 31일에는 88명, 9월 21일 청문회 둘째 날에는 101명이 됐다. 다섯 달이 안 돼 스물다섯 배다. 2001년 가을 NHTSA 집계는 사망 271명, 부상 800명 이상이었다(UPI와 크루거·마스 논문이 인용한 수치, 이 중 트레드 분리 192명). 271명 가운데 열에 일곱이 트레드 분리와 연결됐다는 뜻이다.

경고는 밖에서 먼저 왔다. 9월 6일 청문회에서 한 의원이 말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전체에 차가 6,000대도 안 되는데, 1999년 사우디에서 사고 18건, 사망 7명이 났습니다." 첫 청문회에서 두 달이 안 된 11월 1일, 트레드법(TREAD Act)이 서명됐다. 해외 리콜을 미국 당국에 보고하게 했고, 13조는 교통부 장관에게 타이어 공기압이 크게 낮으면 운전자에게 알리는 경고 장치를 신차에 의무화하는 규칙을 1년 안에 만들라고 했다. 지금 미국 신차 계기판의 타이어 공기압 경고등이 여기서 나왔다.

청문회장에서 두 회사는 서로를 겨눴다. 포드 최고경영자 자크 나세르가 말했다. "포드는 몰랐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파이어스톤 손에서 데이터를 사실상 비틀어 빼앗아 직접 분석하기 전까지, 포드는 리콜 타이어에 결함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9월 21일 파이어스톤 부사장 존 램프가 받았다. "이제 우리는 26psi에서는 익스플로러의 안전 여유가 다른 일부 SUV에 비해 매우 낮다는 것을 압니다." 램프는 같은 증언에서 한 문장을 더 남겼다. 이번 리콜이 "100년 역사에서 어떤 사건보다도" 회사와 3만 5,000명 직원에게 큰 타격을 줬다는 것이다.

100년.

일본 회사가 산 지 12년이 지났는데, 회사의 증인은 회사 나이를 1900년 애크런부터 셌다.

파업과 불량 사이에는 상관만 있다

리콜된 윌더니스 AT는 디케이터 공장 것이었다. 그 이름은 몇 해 전 다른 사건에서 먼저 나온다.

1994년 4월 1일 노사 계약이 끝났다. 프린스턴대 경제학자 앨런 크루거와 알렉상드르 마스가 정리한 회사 요구안은 이랬다. 8시간 근무를 주야 교대 12시간으로. 공장은 주 7일. 신입 임금 30% 삭감. 시급 노동자도 의료비 분담. 고참 휴가 2주 단축. 두 사람은 이 요구가 브리지스톤 인수 뒤 "첫 흑자를 낸 해 직후"에 나왔다고 적었다.

7월 12일 4,200명이 파업에 들어갔다. 디모인·디케이터·오클라호마시티 공장과 애크런 연구센터, 노블스빌 에어스프링 공장이었다. 회사는 대체인력 2,300명을 뽑았고 1995년 1월 이들을 영구 대체인력으로 돌렸다.

클린턴 대통령은 1995년 1월 13일 성명을 냈다. "브리지스톤-파이어스톤 경영진은 노동 분쟁을 평화적 단체교섭으로 푸는 우리의 전통에 노골적으로 등을 돌리고 있다." 3월에는 파업 노동자를 영구 대체한 기업과의 연방 계약을 제한하는 행정명령 12954호에 서명했다. 재계가 소송을 냈고 브리지스톤/파이어스톤도 원고 가운데 하나였다. 1996년 2월 워싱턴 연방항소법원은 행정명령이 전국노동관계법과 충돌한다고 판단했다. 파업은 1996년 12월 합의안 비준으로 끝났다.

크루거와 마스는 타이어 고장 자료를 공장과 생산 시기별로 쪼갰다. 분규 기간 디케이터에서 만든 타이어는 생산 4년 뒤 다른 공장 타이어보다 보상청구로 이어질 가능성이 "최소 15배" 높았다. 월별 자료로 보면 불량이 몰린 때는 1994년 초 임금 양보를 요구하던 무렵, 그리고 1995년 말부터 1996년 초 대체인력과 복귀자가 한 라인에 섰던 무렵이었다.

여기까지가 연구가 말한 것이다. 시기와 공장이 겹쳤다는 상관관계다. 파업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고 말하는 연구는 아니고, 정부 조사는 설계와 포드 사양, 공기압까지 함께 따졌다. 그래도 남는 것이 있다. 1994년 파업한 세 생산공장 가운데 디케이터는 2001년, 오클라호마시티는 2006년에 닫혔다. 디모인만 남았고, 디모인도 2024년부터 여러 차례 감원을 겪었다.

팩스 한 장이 95년을 끝냈다

2001년 5월 21일, 브리지스톤/파이어스톤 회장 겸 최고경영자가 된 존 램프가 나세르에게 편지를 보냈다. 발신지는 내슈빌, 편지에는 "Via Fax"라고 적혀 있었다.

"오늘 브리지스톤/파이어스톤이 포드 자동차와의 타이어 공급 관계를 끝낸다는 것을 알려 드립니다. … 사업 관계는 개인 관계처럼 신뢰와 상호 존중 위에 세워집니다. 우리 관계의 기본 토대가 심각하게 무너졌기에 더는 포드에 타이어를 공급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거의 100년의 역사 끝에 가볍게 내리는 결정이 아닙니다."

램프가 쓴 "거의 100년"은 조금 넉넉하다. 1906년 첫 주문부터 세면 95년이다. 공급 중단도 전 세계가 아니라 미주의 새 계약에 한정됐고, 기존 계약은 지키겠다고 했다.

이튿날 포드는 윌더니스 AT 최대 1,300만 개를 무상 교체하겠다고 발표했다. 세후 비용은 21억 달러. 타이어 한 개에 160달러 넘게 드는 셈이었다. 6월 27일 파이어스톤은 디케이터 공장 폐쇄를 발표했다. UPI가 "리콜된 650만 개 대부분을 만든 공장"이라고 쓴 곳이고, 1,380명이 일하고 있었다.

두 회사는 갈라섰지만 두 집안은 그럴 수 없었다. 1947년 6월 21일 하비 파이어스톤의 손녀 마사 파크 파이어스톤이 헨리 포드의 막내 손자 윌리엄 클레이 포드와 결혼했다. 그 아들 윌리엄 클레이 포드 주니어는 2024년 기사에서 포드 자동차 이사회 의장(executive chair)으로 소개된다. 두 창업자 모두의 증손자다. 팩스는 계약을 끝냈지 핏줄을 끝내지는 못했다.

법인은 껍데기일 뿐이라는 반론

여기까지 읽고 이렇게 반박할 수 있다. "법인은 그릇일 뿐이다. 회사를 회사로 만드는 건 사람과 장소와 결정이다. 본사는 내슈빌에 있고 최종 결정은 도쿄에서 내린다. 애크런의 승용·트럭 타이어 라인은 1980년에 멈췄다. 1994년 파업한 생산공장 셋 중 둘은 닫혔고, 브리지스톤이 파이어스톤에게서 산 첫 공장 라버뉴도 닫혔다. 합병에서 어느 쪽 법인 껍데기가 살아남았는지는 서류 정리의 문제다. 거기서 파이어스톤이 살아 있다는 이야기를 만드는 건 감상이다."

만만치 않은 반론이다. 이 반론은 반대쪽 감상에도 똑같이 들어맞는다. 일본 회사가 미국의 자존심을 사서 애크런을 비웠다는 익숙한 이야기도 날짜가 안 맞는다. 애크런의 승용차 타이어는 1980년에 멈췄고, 본사는 1987년 미국인 경영진이 시카고로 옮겼다. 1989년 본사를 애크런으로 되돌린 쪽이 오히려 브리지스톤이었다.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법인은 그릇이 맞다. 다만 책임과 기억을 담는 그릇이다. 리콜을 발표하고, 의회에 서고, 디케이터를 닫고, 주 정부들과 합의금을 맞춘 것은 브리지스톤/파이어스톤이었다. 파이어스톤이 만든 타이어를 법적으로 책임진 회사다. 그 회사를 이끈 사람들도 1988년을 단절로 대하지 않았다. 램프는 "100년 역사"를 말했고, 결별 편지에는 "거의 100년"을 썼다. 도쿄는 그 인수를 "제2의 창업"이라 부른다.

창업이 두 번이면 첫 번째가 있었다는 뜻이다.

가장 흔한 파이어스톤은 정비소 간판일지 모른다

지금 미국에서 파이어스톤이라는 글자를 가장 자주 보는 곳은 타이어 옆면이 아닐지 모른다. 파이어스톤 컴플리트 오토 케어는 2026년 6월 서비스 100주년을 기념하며 48개 주에 매장 1,800곳 이상, 정비 기술자 9,500명 이상이라고 밝혔다. 주 하나에 평균 37곳이 넘는다. 프랜차이즈가 아니라 회사 직영이다. 운영 법인은 브리지스톤 리테일 오퍼레이션스이고, 이 법인 아래에는 파이어스톤 신용카드를 내주는 은행까지 있다. 정비소와 은행이 한 법인에 묶여 있고, 그 법인의 지분을 따라 올라가면 도쿄가 나온다.

2025년 7월 라버뉴의 기계가 멈췄다. 브리지스톤이 미국에서 처음 가진 공장이었고, 파이어스톤이 지은 공장이었다.

공장은 닫혔다.

그 공장을 판 회사는 아직 문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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